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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역사저널 그날 - 최충헌을 암살하라 : 우리나라 최초 신하의 권력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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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 최충헌을 암살하라 : 우리나라 최초 신하의 권력 세습

 

 

무신정권이라는 말을 드라마나

 

역사책을 통해서 많이 들어봤을것이다.

 

무려 100년간 장군이

 

최고 권력자가 되어 나라를 통치한 시기가 바로

 

무신정권이고 그중심에

 

우리나라 최초 신하의 권력 세습을 하게되는

 

최충헌이 있다.

 

 

최충헌 이전의 권력자인 정중부, 이의방, 이의민처럼

 

최충헌 또한 최고 권력자가 되고나서 부터

 

자기의 권력과 야심을 채우기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암살위협도 많이 받았다.

 

 

그 대표적인 암살 사건이 바로

 

희종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암살사건인데

 

이사건은 실패로 돌아갔고

 

최충헌의 권력을 공고히 만들어주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만들어진게 교정도감인데

 

이 교정도감이 바도 최씨 정권의 4대 62년간의

 

권력세습을 가능케한 히트상품이라 할수 있다.

 

 

경대승이 죽고 나서 사라진 도방을 부활시킨

 

사람이 최충헌인데 이유는

 

너무 많은 암살 위협을 받아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해

 

부활시켰으며

 

도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힘이 쎈사람을 뽑았다고 한다.

 

 

희종은 무신정권의 다른 왕들과 달리

 

태자를 거쳐 왕이 된 사람으로써

 

전통성과 명분이 있는 왕이었고

 

즉위직후에는 최충헌에게 은문상국이라고 부를만큼

 

파격적인 승진과 우호적으로 지낸 왕이다.

 

 

그런 희종이 왜 최충헌을 암살 하려 했을까?

 

그 이유에는 몇가지가 있는데

 

첫번째가 바로 최충헌의 권력이 왕을 위협하는 정도였고

 

두번째가 폐위된 왕자 왕숙의 신분복원과 개경에 돌아오는 일이였다.

 

무신정권에 유일하게 맞섰던 왕인 희종의 암살실패가

 

최충헌의 권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고

 

그 이후 최충헌은 왕은 아니지만 왕 위에 군림하는 신하가 되었다.

 

 

최충헌의 집권후 몽골에 쫒겨 내려온

 

거란군의 고려 침략이 있었는데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 바로

 

최충헌은 나라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독재자였다는 것이다.

 

 

조충이라는 장군의 활약과 몽골의 연합덕분에

 

거란을 물리쳤지만

 

몽골과 동진군이 고려에 들어오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최충헌은 천수를 누리고 죽었는데

 

죽음을 예감한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그것을 통해 노래를 하루종일 듣다가 죽었다고 한다.

 

 

최충헌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4대 권력세습이라는 기초를 만들었고

 

고려를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하지않고 자기 자신의 권력만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충헌 개인에 대한 평가와

 

최충헌 시대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최충헌 개인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지만

 

최충헌 시대의 평가는 훗날 신진사대부가 대는

 

문인들을 등용하였고

 

그것이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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